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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역과 낙성대 역 그 사이

작성자
예호
작성일
2025-08-05 14:08
조회
130

서울대 역과 낙성대 역 그 사이

-거기 어딘가 책방의 문이 열렸다면-

나는 들어가 영 돈벌이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들고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이태리 가곡집이 일 이 만원대가 넘는 가격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악보를 이리 날마다 복사하느니 그 옛날 찬송가를 한 페이지 씩 넘겨가면서 부르던 날들의 추억을 기억해 내곤 책을 사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또 콩나물과 장미 꽃 사이를 왔다갔다 살다보니 몇 개월이 지났다.

금요일 비 내리는 오후, 막걸리를 아주 조금 걸쳤다. 중년과 노년의 그녀들과. 문득 날이 흐릿한 게 서점 나들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낙성대 지하철 역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갔다.

한 동안 논술 과외를 하러 다니던 그 찻 길 가의 중고 서점을 다시 찾았고 그리고 다시 중고서점 <<흙>>에 들렀으나 이태리 가곡집은 없었다. 다시 사당 역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갔다. 그래 저 해돋이 교회의 건너 편이었다는 기억의 힘을 믿고 그 지하의 매장을 찾았다. 책이 없어서 다시 주문을 하고 나왔다. “그 때 있었는데 ....” 나는 점원에게 뒤를 흐리며 말했고 그냥 거기서 두어 정거장을 걷기로 하고 매장을 등지고 나와서 걸었다. 핸드 폰이 울린다. “저 책을 찾았어요. 멀리 가셨나요?” 나는 다시 매장을 향해 돌아섰다. 책을 들고 그 옛날 대학 시절에도 찾지 못했던 중고 책을 가슴에 끼고 나왔다. 단 돈 2500원이 들었다. 나는 가난한 고학생이 된 듯 뭔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진정한 음대생이 된 듯 했다.

집에 와서 책을 보니 전 주인의 흔적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책이 필요 없어진 비 전공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 책이 필요한 노년의 전공생이 되었고.

사실, 집으로 걸어오는 그 길에서 마치 70년대 청계천과 동네 책방을 다니며 김우종의 < 한국현대 소설사>를 사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새록 새록 솟아났다. 몇 권의 문학사 책들은 유명 서점에선 찾을 수도 없었다. 절판되어서. 그 때 이렇게 책을 사는 것이 이토록 쉬운 시대를 맞이할 줄 알았더면 말이다. 그렇게 책을 마구 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책을 못 버리고 이제는 책을 안 사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책은 정말 업보 같았다.

그 날 책 몇 권을 새롭게 사서 돌아오는 이 만학도 성악인은 말이다. 가슴이 뛰고 어찌 이리 인생이 낭만적인지 이 곳이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 근처여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막걸리 두어 잔의 취기로 비 구름에 감추인 저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시금 새겼다는 이야기다. 이곳 낙성대와 서울대가 있고 오래된 책방과 내가 찾는 책이 있는 이 거리를 걸으면서 말이다.

이 곳을 떠나지 않으리, 나는 이 곳을 떠나지 않으리.

                                                                                             2025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 둔 어느 날

                                                                                                                                                          김 예 호

 

낙성대 중고서점 ‘흙서점’은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헌책방으로, 서울대입구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오랜 전통과 친근한 분위기로 지역 주민과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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